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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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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gave me a chance to prove myself. (그들은 나에게 내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주었어요.)

I used my umbrella to shield myself from the rain.
나는 비를 막기 위해 우산을 사용했어요.

Please allow me to introduce myself. (나를 소개하게 허용해주세요.)

I consider myself lucky to have such supportive friends. (나는 이렇게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In my family there are three children, myself and two younger brothers.
저희 가족은 자녀가 세명 있는데 저와 두 남동생이 있습니다.
I graduated from New York University.
저는 뉴욕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I love to hike and travel in my freetime.
한가할 때 하이킹과 여행을 매우 좋아합니다.

울며 겨자 먹기
I forced myself to do it.(=grin and bear it)

난 웃음거리 되긴 싫어.
I don't want to make a laughingstock of myself.

여름 내내 계속 편지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 하고 실제로는 못썼어요.
I kept telling myself all summer that I should write to you, but I never got around to doing it.

알아듣겠어?
Am I talking to myself?

잠이 깨어 정신이 맑아지도록 나는 커피를 마셨다.
I drank coffee to wake myself up.

어느 날 아침 깨어 보니 나는 일약 유명해져 있었다.
I awoke one morning to find myself famous.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일려고 노력하고 있다.
I'm trying to accustom myself to getting up early.

나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한 시간씩 달리기를 한다.
I run for an hour every day to keep myself fit [keep in shape].

그것이 날씬한 몸매를 만드는 데는 아주 좋은 것 같다.
I think it's great to get myself in shape.

나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를 원한다.
I want to be able to make myself understood in English.

나는 영어로 하는 표현 방법을 모를 땐 종종 영어 사전을 참조한다.
When I don't know how to express myself in English, I often refer to the dictionary.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먹었다.
I helped myself to anything I liked.

나는 홀로 기쁨에 잠겨 있었다.
I gloated to myself.

진정할려고 숨을 깊게 쉬었다.
I took a deep breath to calm down myself.

I could not bring myself to do it.
나는 그것을 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나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One morning I awoke to find myself famous.

in accord with (=agree with) : ∼와 일치하여
I am glad to find myself in accord with your view.
(나는 당신의 견해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I can't bring myself to do it.
그것을 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정말 술을 끊어야 되는데...
I've definitly got to put myself on the wagon.

난 억지루 그걸 했어.
I had fored myself to do that.

내 스스로 채찍질 하려 하는 겁니다.
I try to push myself.

I attached myself to a group of tourist entering the museum.나는 박물관에 들어가는 여행자 무리에 끼어들었다.

* 자기를 소개하다
Let me introduce myself.
제 소개를 하도록 해주십시오.
My name is Lee So-ra.
제 이름은 이소라입니다.
How do you do? My name is Min-su, Kim Min-su.
처음 뵙겠습니다. 민수, 김민수입니다.
I'm Park Sang-ho and glad to meet you.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박상호입니다.
Hello, my name is Lee Jun-ho.
안녕하세요, 저는 이준호라고 합니다.
Hi, I'm Lee Jun-ho
안녕(하세요), 저는 이준호입니다.
Hi, Lee Jun-ho.
안녕, 나는 이준호야.

* 타협점을 구하다.
If the quantity you want to buy is much larger than 6,000, the expenditure needed for the change in the design will be worth our while.
worth our while: (우리에게 있어) --할 가치가 있다. 해볼 만하다
만약 귀사에서 구매하려는 물량이 6,000개 이상이 된다면, 디자인 변경에 따른 지출 비용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Otherwise, I'm afraid the manufacturer won't agree on any change.
그렇지 않다면, 경영진은 어떠한 변경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It means the manufacturer must spend a lot of money for such a change.
그것은 그렇게 변경하기 위해 제조업자가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I myself think it most recommendable under the circumstances.
현 상황에서는 그것이 가장 권장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 책임을 인정하다.
I admit that the damage to the goods was caused by our inadequate packing process.
우리의 포장 과정이 잘못되어 물품에 손상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At any rate, it is our fault that we failed to make the shipment as we promised you in the contract.
하여튼, 계약서에 귀사와 약정한 대로 출하하지 못한 것은 우리 회사의 잘못입니다.
It is absolutely our fault that we delivered you the parts of a different model.
다른 모델의 부품을 귀사에 송달한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입니다.
I have only myself to blame for the accident.
그 사고는 제 불찰입니다.
It os our fault that we shipped to you a wrong item.
다른 제품을 귀사에 출하시킨 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I can't get my ideas across to him.
( 상대방이 이 쪽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을 때 “그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가 없다.” )
= I can't get him to understand.
= I can't get my ideas understood.
I can't make myself understood.
( 자신의 의사표현 능력이 부족해 남에게 의사전달을 할 수 없을 때. )
= I can't express myself.

I apologize for the delay in replying to your request but should you have any further queries please do not hesitate to contact either Edward Jones or myself.
귀 요청에 답신이 늦어 사과 드립니다. 만약 그밖에 더 필요한 질문이 있다면 Edward Jones씨나 본인에게 언제라도 연락하십시오.

laugh
laugh+prep. :: He laughs at me.
laugh+O+prep. :: I laugh myself to death.
laugh+O+complement :: I laugh myself helpless.

read
read+prep. :: He reads at a junior high school level.
read+as :: It reads as follows.
read+complement :: This book reads interesting.
read+O+prep. :: Read the letter to me.
read+O+O :: Read me the letter.
read+O+as :: You must not read a statement as an insult.
read+O+complement :: I read myself hoarse.

work
work+prep. :: I worked at American history.
work+O+prep. :: I worked myself to death.
work+O+complement :: He worked himself free of the ropes.

I want to pay a call.: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I must go and relieve myself.)
→ ‘짧은 방문을 하다’(직역), 화장실을 chamber of commerce라고도 함.
- I have to see a man about a dog.→ 자리를 뜨고자 할 때도 사용하고 여성의 경우에는 I'm going to pick up the flowers.라고 함.

7.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가를 외국여행을 해보고서 처음으로 알았다.
→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not to be able to make oneself understood,「불편한」-inconvenient,「외국여행을 하다」는 go on a foreign tour,「 ~한 것은 외국여행을 해 보고서 알았다」가 강조되므로 역시 It was not until I went on a foreign tour that ~로 한다.
(ANS) It was not until I went on a foreign tour that I knew it was inconvenient not to be able to make myself understood.

crank up: 힘을 내게 하다.(= to get someone or something started)
ex) The following morning, I couldn't crank myself up enough to come to work on time.
(다음 날 아침 나는 제 시간에 출근할 만한 기운이 나지 않았다.)

아무도 제게 그 점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군요.
Nobody can MAKE it CLEAR to me.
Cf) Did I make myself clear? - 내말 알아들었습니까?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지.
BEEN THERE DONE THERE.
☞ I experienced that It's nothing new to me.
Ex) a: I was really angry when I was jobless for three months.
b: Oh,Yeah, Been there myself.

나 혼자서 쓸 침실이 필요합니다.
I want a bedroom TO MYSELF.
(= for one's own private use, not to be shared)

나는 신경을 쓸 수 없다.
I can't hear myself think.
☞ not/hardly/barely hear oneself think - can't give one's attention to anything.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beat는 '때리다'인데, 때려눕히고 '이기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I can beat you in one-on-one.
일대일로 붙으면 내가 이겨.
-
beat이 '이기다'이므로 '앞질러 ~를 하다, 선수 치다'는 의미도 갖습니다.
They were trying to beat the deadline.
그들은 마감 시간보다 빨리 일을 끝내려고 했다.
-
Beats me! 이 표현은 '모르겠어!'라는 뜻으로 많이 씁니다.
그럼 이것은 어떻게 이해를 할까요?
이 표현 앞에는 It이 생략되었는데
이 it이 나를 이긴 것 즉 내가 진 거니까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
to beat around the bush는 bush(숲)의 around(주위)만 때리는 거니까
핵심을 말하지 않다.
Stop beating around the bush. Get to the point.
그만 둘러대고 본론을 말해.
-
to beat oneself up이라고 하면 자신을 때리는 것이니까 그만큼 후회하다는 의미입니다.
Why do I have to beat myself up?
왜 내가 후회해야 되지?
-
무지 피곤하다고 할 때 beat라고 합니다. 온 몸이 맞은 것처럼 쑤시는 경우죠.
I'm dead beat.
나 정말 피곤해.
-
속어로 '꺼져!'라고 할 때 Beat it!이라고 합니다.
혹시 마이클 잭슨이 삐레(Beat it)하고 부르던 그 노래 기억나세요?
I don't want your advice! Just beat it!
네 충고 따윈 필요 없어. 그냥 꺼져!

I will take an excercise. (X)
"운동을 할겁니다." 의외로 상당히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영어로
이 표현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을 들은 외국인은 무슨 시험이라도 치르는 줄 알 것이다.
'~을 해야겠다'라는 표현은 주로 'I need ~'나 'I'll get ~'으로 표현한다.
① I need some excercise.(난 운동이 필요해요.)
② I'm going to get some excercise.(운동을 좀 할겁니다.)
③ I'm going to work out.(운동을 해야겠어요.)
④ I'm going to put myself through a workout.
(운동으로 몸을 좀 다듬어야 하겠어요.)

1) I'm trying to give them up myself.
: 저도 (담배를)끊으려고 합니다.

나는 이 길을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고 있어요.
I know these streets like the back of my hand.
= I know these roads so well.
= I could find my way around here with my eyes closed.
= I know these streets like no one else.
* I'm new in Seoul. ( 전 서울에 처음왔습니다.)
* I think I lost. ( 길을 잃은거 같아요. )
* I'm sorry I'm new around here.
= I'm sorry I'm a stranger myself.
= I'm sorry I'm a totally stranger here.
( 미안합니다, 저도 처음이예요.)
* I know how to get around here.
( 이 동네는 제가 잘 알지요.)
* I'll show you around. (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But I can't put it all on my mother.
I can't blame my failure on my mother.
There is no one to blame but myself.
That's all my fault.
I must be somewhat responsible for my actions.
하지만 저는 그 모든 걸 엄마 탓으로 돌릴 수 없어요.

I had to see this for myself.
나는 이걸 직접 봐서 확인해야 했어.

I don't want to be here by myself.
난 여기 나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난 여기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I don't want to be here by myself.

몸이 좋아진 느낌입니다. (피곤하거나 아팠다가 몸이 좋아졌을 때)
I'm beginning to feel myself.

dolt 바보같은 사람 (stupid person)
I thought I was talking to a mature audience; instead, I find myself addressig
a pack of dolts and idiots.

flux 흐름 (flowing; series of changes)
While conditions are in such a state of flux, I do not wish to commit myself
too deeply in this affair

flux 흐름 (flowing; series of changes)
While conditions are in such a state of flux, I do not wish to commit myself
too deeply in this affair

I want to buy a van and have it converted so I can drive it myself.
나는 밴을 사서, 내가 직접 운전할 수 있도록 개조하고 싶다.

But to this day, whenever I find myself thinking 'If only', I change it to 'next time'.
그렇지만 오늘까지도 'if only'라는 말을 생각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그 말을 'next time'으로 바꾼다.

It's not only myself I'm speaking for.
제 경우만 말씀 드리는 게 아닙니다.
I've got to keep our customers in mind as well.
저희 고객들의 기호도 유념해야 하니까요.

Now that I'm married, I'll have to concern myself with investments.
이제 결혼도 했으니 재테크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요.

give my heart away 마음을 열고 진심을 주다
- I offer my love to someone. / I totally open myself to someone else.

I mean we were really poor. So when I came over here, I had no money.
정말 가난했거든요. 그래서 미국에 왔을 때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So of course, my goal was, you know, to get rich and to make it, be successful in business
그러니 제 목표는 당연히 부자가 되는 것과 사업에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and to be a bodybuilding champion and to get into movies and all this stuff.
그리고 보디빌딩 챔피언이 되는 것, 영화에 출연하는 것, 이런 것들이요.
And I was thinking about myself and about my career and about the money I'm going to make.
그래서 제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제 경력과 제가 벌어들일 돈만 생각했었죠.
But now that period is over. So you go through that.
하지만 그 시기는 이제 끝났습니다. 그러니 그 문제는 넘어가죠.
* and all this[that] stuff ((구어)) 그밖에 이것저것, 기타 등등 cf. and stuff (like that) ...따위, ...같은 것

I have never thought... I mean, I'm one of those guys that have big dreams but not as big... as far as I went,
저는 한 번도... 제가 꿈을 크게 꾸는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지금처럼 이렇게까지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because I saw myself as eventually taking bodybuilding, which I also enjoyed,
결국 보디빌딩을 하고, 이 역시 제가 아주 좋아했던 일이죠,
and going into films and doing movies where I could use my muscles and do the "Hercules" movies and so on.
영화계에 입문해 제 근육을 이용할 수 있는 '헤라클레스'류의 영화들을 찍는 등등.
It was terrific. But it was time to get out. You know, I wanted to do something different.
정말 끝내주는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 둘 때가 된 겁니다. 전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And now this job is just so challenging.
그리고 지금 이 일은 아주 도전해 볼만한 일이죠.

What is business really about for you?
당신에게 사업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Well, I've never thought of myself as a businessman and never was interested in going into business.
글쎄요. 제 자신을 사업가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사업에 뛰어드는 데 관심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What I've always wanted to do is create things and create things that I can be proud of.
제가 늘 하고 싶었던 것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 제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 think of A as B A를 B로 간주하다[여기다]
* go into (직업, 사업 등)을 시작하다

What did you think then?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Well, I thought I better prepare myself to not look upset when I lose.
제가 졌을 때 너무 낙담한 표정을 짓지 않도록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 upset 낙담한, 당황한

T : Your name, please?
S1 : Hi, I'm Song-eun Kim. I'll just tell you a bit about myself.
I'm from Seoul. Currently, I live with my parents and younger sister.
T : Any questions for her?
S2 : What is your hobby?
S1 : Well, I like listening to music and watching TV.
S3 : What is your motto?
S1 :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others do to you.
S4 : What would you like to be in the future?
S1 : I'd like to be a flutist.
T : That's enough. Thank you.
교 사: 이름이 뭐예요?
학생1: 김송은입니다. 제 소개를 할께요. 서울 출신이고,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어요.
교 사: 질문 있으면 하세요.
학생2: 취미가 뭐야?
학생1: 음악감상과 텔레비전 보기야.
학생3: 좌우명은?
학생1: "다른 사람이 내게 해주기를 원하는 대로 하기"야.
학생4: 장래 희망은?
학생1: 플롯 연주자.
교 사: 좋아 이제 됐어요. 고마워요.

T : Here you are! Mmm... You know what? Men should have the courage to admit that they were wrong.
S : Yes?
T : Don't you have something to tell me?
S : I beg your pardon?
T : If you insist on not telling me the truth, I will tell you myself.
S : Okay, I will tell you. I am sorry for cheating.
I promised my mom that I'd get good grades, but I didn't study hard enough, so ...
T : No matter what the reason, what you did is unacceptable. Do you understand?
S : Yes, Ms. Yun. I won't do it again.
교 사: 왔군. 너도 알겠지만, 사람은 자기 잘못을 인정할 용기를 가져야지.
학생: 네?
교 사: 나한테 할 말 있지 않니?
학생: 무슨 말씀이신지요?
교 사: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하지.
학생: 제가 할께요. 부정행위를 했어요.
어머니께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충분히 공부를 못해서...
교 사: 이유가 무엇이든지, 네 행동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해하겠니?
학생: 네. 선생님 다시는 안 할께요.

Although I ask no special consideration for myself, I am not too proud to supplicate in behalf of my children.
나 자신을 위해 특별 고려를 부타가하지는 않지만 내 자녀들을 위해 간청할 만큼은 겸손하다.

I am very much flattered that you had referred to me as " eminent educator," but I prefer to think of myself as just a good teacher.
당신이 나를 " 저명한 교육자"로 지칭하니 매우 기쁘긴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그저 훌륭한 선생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Only my family's situation of extreme exigency could have led me to humble myself by asking him for help.
단지 나의 가정형편이 긴박했더라면 내가 겸손하게 그의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Realizing that the cut in my allowance obliged me to retrench, I put myself on a rigorous diet of only one banana split a day.
용돈 삭감으로 내가 긴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엄격하게 하루 바나나 스플릿 한개로 군것질을 때웠다.

The way in which he asked for a loan was so disarming that almost to my surprise I found myself giving him the money.
빚을 부탁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나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이어서 거의 내 스스로가 놀랍게도 그에게 돈을 건네주고 있음을 알았다.

When I found myself flushed with anger, I realize that I was not so invulnerable to his bitter sarcasm as I had thought I was!
화가 나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을 때 나는 그의 신랄한 야유에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은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At the moment it's a bit hard because I'm not used to living away from home.
I have to do everything for myself, like cooking, washing and ironing.
Mom used to do all that!
Studying here is very different from high school in my home town.
We have to choose which lectures to go to and when to do it, but here you have more freedom.
I'm not used to that so I often leave my essays to the last minute.
Then I have to work right through the night, which is something I've never done before.
나는 지금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다소 힘들다.
난 스스로 요리, 세탁 그리고 다림질과 같은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엄마가 그 모든 일을 하곤 했다!
여기서 공부하는 것은 고향의 고등학교와는 매우 다르다.
우리는 어떤 강좌를 신청해서 언제 수강할지를 선택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더 자유롭다.
나는 그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종종 마지막 순간까지 에세이 숙제를 미룬다.
그리고 밤새워 숙제를 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이전에는 결코 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When I was growing up, television wasn't encouraged ― but I was permitted to watch return of “I love Lucy.”
And did I ever love her!
When I was six, I asked my father, a minister in San Diego, to arrange a meeting with my idol.
He tried reasoning with me, but I didn't listen.
Papa paused, looked me straight in the eye and said, “I want you to be real.”
Over the years Papa's words became increasingly important to me.
Being ‘real' meant knowing who I was, being true to myself, and standing up for my beliefs.
내가 어렸을 때, 텔레비전 시청은 권장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I love Lucy.”의 재방송은 볼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그리고 나는 정말 Lucy를 사랑했다!
6살 때, 나는 San Diego의 목사인 아버지에게 나의 우상과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말씀을 멈추고,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현실적이기를 원한다.” 지난 몇 년간 아버지의 말씀은 점점 나에게 중요해졌다.
‘현실적'이 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 내 자신에게 충실한 것, 그리고 나의 믿음을 고수하는 것 등을 의미했다.

Before I got on the plane, my father gave me a good tip to make myself more comfortable in the plane.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아버지께서는 비행기에서 좀더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나에게 유익한 조언을 해주셨다.

One Saturday morning last summer, my alarm clock failed to go off.
I was wildly pulling on jeans, flying out the door, and leaping onto my bike.
I had only fifteen minutes to get to Dr. Johnson's house.
He had hired me to mow his vast lawn, and he had warned me that he did not tolerate lateness or excuses.
He was a tyrant, so I feared him.
He paid top dollar, however, so I tried to act obediently.
As I pedaled up Elm Street, I said to myself, “I have a feeling that this day will not go well.”
지난여름 토요일 아침, 나의 자명종 시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청바지를 거칠게 잡아당겨 입고서 문밖으로 뛰어 나가 내 자전거에 올라탔다.
Johnson씨 댁에 도착하기에는 15분 정도 밖에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넓은 잔디밭의 잔디를 깎기 위해 나를 고용했다.
그는 나에게 지각이나 변명 따위는 참을 수가 없다고 경고했었다.
그는 폭군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높은 보수를 지불했다. 그래서 나는 고분고분 행동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Elm가를 오르며 힘차게 페달을 밟으면서 “오늘은 (아무런 일 없이) 잘 지나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야.” 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 go off : 작동되어 울리다

Susie remembers the day when she was on the stage as a professional singer for the first time.
It was long after she had been discovered at a singing contest.
Despite her late debut, Susie is now popular among many Asians.
Thanks to the success of her debut album, My love, released two years ago, and recent television roles in Japan, she no longer feels unsure of her abilities.
She says, “I would give myself only 20 points for singing when I first started out. Now, after practicing in the recording studio every day, I give myself 90 points.”
Susie는 전문적인 가수로서 처음으로 무대에 섰던 그 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노래경연대회에서 알려지고 난지 훨씬 후의 일이었다.
그녀의 늦은 데뷔에도 불구하고, Susie는 이제 많은 아시아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2년 전에 발매된 그녀의 데뷔 앨범인 ‘My love'의 성공과, 최근 일본의 TV에서 활동한 덕택으로 그녀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더 이상 자신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노래 부르기 위해 처음 무대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에는 나에게 단지 20점 밖에 줄 수 없었지만, 이제 매일 녹음실에서 연습한 후에는 나에게 90점을 줄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다.


When I was studying for my doctorate at the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I spent every weekend in my study that I had established in our garage.
One Sunday a friend took my family to Disneyland.
They phoned me from there: “Hey, John! I bet you wish you were here with us!”
First, I grumbled at them.
Then I felt sorry for myself, sitting alone in a hot garage while others were having fun.
And then I reminded myself why I was there.
I wanted to be Dr. Anderson.
I enjoyed the thought of myself as Dr. Anderson.
Ignoring the temperature and the phone call, I went back to work.
내가 Southern California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을 때
나는 매 주말마다 차고 속에 마련한 서재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일요일 한 친구가 우리 가족을 Disneyland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이봐, John. 우리와 함께 오고 싶어 했을 테지.”
처음에 나는 그들에게 불평했다.
그 후 그들이 즐겁게 지내는 동안 더운 차고에 혼자 않아 있는 나 자신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왜 차고에 있는지를 떠올렸다.
나는 Anderson 박사처럼 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나를 Anderson 박사로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더위와 통화 내용도 무시한 채 나는 다시 공부를 하러 갔다.

On the first day, I and a co-worker went into the store after work.
Needless to say, everything looked good.
The store was pretty well stocked.
We both took mental notes of things we'd eventually get.
We wisely decided not to buy anything on that day.
We had plenty of time.
We walked around leisurely, eyeing different items.
I said to myself, “Here are some cheap computer games.
That pair of roller blades for $25 looks good, too.
That battery-powered electric shaver could sure come in handy.”
Yes, we were there to see the goods and to plan our purchases for the last day of the sale, when the prices would be really low.
첫날 나와 내 동료는 퇴근 후 그 백화점에 갔다.
말할 것도 없이,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그 백화점은 (물품들이) 아주 잘 갖춰져 있었다.
우리 둘 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살 물건들을 머리 속에 기억해 두었다.
우리는 그 날 바로 물건을 사지 말자는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우리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한가하게 주변을 걸어 다니며 다른 물품들을 구경했다.
나는 “여기에 값 싼 컴퓨터 게임들이 있네.
저 25달러짜리 롤러 블레이드도 정말 좋아 보이는데.
저 배터리 충전용 전기면도기는 확실히 편리할 거 같아.”라고 혼잣말을 했다.
당연히 우리는 물건값이 가장 많이 내려가는 세일 마지막 날 그 상품들을 보고 구매를 계획하기 위해 그 백화점에 있었다.

Yesterday I ate lunch at your restaurant, which you advertised as “a dining paradise.”
It was so completely packed with people that the line snaked out the door, and by the time I reached the counter, I was exhausted.
I decided on the hamburger steak special and side dishes, but there was no potato salad left and the beans were burnt more than baked.
At the table, the truck driver sitting across from me wouldn't stop talking about highway taxes.
Finally, when I rose to leave, the waiter “kindly” yelled at me to clean up after myself.
Throwing away that plate of food was the most enjoyable part of dining at your restaurant.
어제 저는 당신이 “식사의 천국”이라고 광고하신 당신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곳은 문 밖까지 줄지어 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제가 카운터에 도착했을 때는 지치고 말았습니다.
저는 특식으로 햄버거 스테이크와 곁가지 음식들을 먹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감자 샐러드는 남은 게 없었고, 콩 요리는 구웠다기보다는 불에 탄 듯 했습니다.
제 건너편 자리에 앉은 트럭 운전사는 고속 도로 택시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제가 자리를 뜨려고 일어섰을 때, 웨이터는 저에게 제 자리를 치우라고 “친절하게” 소리쳤습니다.
접시에 남은 음식을 버리는 것이 당신의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가장 즐거운 기억 이었습니다.

Several years ago we bought a huge house, more than 200 years old.
In the house there was a room with a very old piano in it.
It was out of tune.
Most of the keys didn't even work.
One night, I was in the house alone.
Suddenly I heard piano music.
It was in perfect tune, coming from the piano room.
To get to the room, I had to go through several unlit rooms and hallways.
I couldn't bring myself to do it.
After a few minutes, the music stopped.
Then my dad came home.
We went to the room.
I tried to play the piano―it was totally out of tune as it had always been.
몇 년 전 우리는 지은 지 200년도 더 된 큰집을 샀다.
그 집에는 아주 오래된 피아노가 있는 방이 하나 있었다.
그 피아노는 조율이 엉망이었다.
건반의 대다수가 작동조차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다.
갑자기 피아노 음악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피아노 있는 방에서 나오는 완벽하게 조율된 소리였다.
그 방으로 가려면, 불이 꺼진 방과 복도를 여러 개 지나가야만 했다.
그럴 마음이 썩 내키지가 않았다.
몇 분이 지난 후 음악이 멈추었다.
그 때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셨다.
우리는 그 방으로 갔다.
내가 그 피아노를 쳐보려고 했지만 항상 그랬듯이 조율이 완전히 엉망이었다.

One step at a time, I move closer to the window until I am just below it.
Then, standing on an old box, I pull myself up the window and see the elephant's eye only a foot away.
Long, straight eyelashes partially cover his eye as he looks toward the ground searching for fruit.
Then, as he picks up one with his long trunk and puts it into his mouth, he lifts his eyes and looks directly at me.
He shows neither surprise nor concern, and I stare into the gray of an elephant's eye forever.
This kind of thing may happen in other areas of Africa, but not in the Luangwa Valley of Zambia.
한 번에 한 걸음씩 창문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서 드디어 바로 그 밑에 선다.
그리고는 낡은 상자를 밟고 올라서서 창문 위로 몸을 끌어올려 1피트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코끼리의 눈을 본다.
코끼리가 과일을 찾아 땅 쪽으로 눈을 내리깔 때 길고 곧은 속눈썹은 눈을 반쯤 덮는다.
그러고 나서 긴 코로 과일을 하나 집어 올려서 입으로 가져가면서, 코끼리는 눈을 들어올려 나를 똑바로 응시한다.
코끼리에게는 아무런 놀라움이나 걱정의 표정이 없고, 나는 코끼리의 눈 속에 있는 회색 눈동자를 언제까지나 들여다본다.
이러한 종류의 일이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는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잠비아의 Luangwa 계곡에서는 그렇지 않다.

The first year of my college was terrible for me.
I didn't know how to handle myself.
I had a growing fear that I might flunk out.
The turnaround came one day during my second semester, on a day when my English professor was returning some essay papers to the class.
She held mine up, and I could see all the red marks and comments she had put on it.
I thought, “Oh, what is she going to do? Criticize my work in front of all these other students?”
Instead, she said, “Your grammar and spelling need a lot of work, Arthur, but this is an example of a very well-organized paper.”
Surely she had no idea what she had done for me.
She had blessed me with an affirmation.
She had shown me I could do something.
나의 대학교 1학년 생활은 끔찍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낙제할 거라는 두려움이 점차로 커져갔다.
영어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작문 과제를 돌려주었던 2학년 어느 날, 전환점이 찾아왔다.
교수님께서는 내 과제를 치켜들었고, 나는 교수님께서 표시한 빨간 표시들과 지적 사항들을 볼 수 있었다.
“아, 교수님께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다른 학생들 앞에서 내가 한 과제물을 힐책하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신, 교수님께서는 "Arthur, 문법과 철자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이것은 매우 잘 짜여진 작문의 예이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교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했었는지 교수님께서는 분명히 몰랐다.
교수님께서는 긍정을 함으로써 나를 축복해주셨다.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Yet thanks to my wife, I began to calm myself down.
I tried to relax in the car.
I allowed myself more travel time and tried not to let the traffic and the slow movement annoy me.
While I couldn't change the traffic flow, I could change my attitude toward it.
하지만 아내 덕분에 나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차에서 편안해지려고 애썼다.
나는 더 많이 걸리는 통근 시간을 받아들였고, 교통량과 느린 속도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교통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그것에 대한 나의 태도는 바꿀 수 있었다.

When Angela moved to our small town, everything started to change.
At the time, some members of the town's swimming club, including myself, were preparing for the National Championships,
which were just six months away.
I had always been the best, and everyone thought that I would be chosen for the relay race.
But now I had the new competition.
There was only one place for the butterfly on the relay team, and we both wanted it.
For two weeks it was awful.
Angela was always the star.
She was faster than I, and her form was better, too.
My chances of being selected were disappearing fast.
My fear caused me to be unfriendly to Angela.
I refused to speak to her and never said anything good about her.
Angela가 우리의 작은 도시로 이사 왔을 때,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를 포함한 그 도시의 수영클럽 회원들 중 일부는 전국선수권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대회는 6개월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항상 최고였으며 모두들 내가 계영 선수로 선발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 새로운 경쟁자가 생긴 것이다.
계영에서 접영 자리가 하나 밖에 없었는데, 우리 둘 모두 그것을 원했다.
2주 동안은 끔찍했다.
Angela가 항상 스타였다.
그녀는 나보다 더 빨랐고 그녀의 자세도 더 훌륭했다.
내가 선발될 가능성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 때문에 Angela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말 건네는 것을 거절했으며, 그녀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The highlight of the adventure came when our van spotted a lion lazily snoring in his sleep.
As the lion woke up, it jumped from beneath the tree and pounded towards the fear-stricken gazelles.
The lion tackled his prey from behind, and the gazelle crashed into the ground right in front of our van.
When I had recovered from the shock, the lion calmly caught his prey in the mouth, and carried it to the nearest tree.
When he feasted on his menu, I could hear the sounds of bones crunching.
When I realized myself in the van, horror in my face disappeared slowly.
I felt like the National Geographic photographer as I took pictures of the lion deeply occupied in his feast.
van을 타고 가다가 코를 골면서 늘어지게 잠자고 있는 사자를 발견했을 때, 내 기분은 이번 여행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사자는 잠이 깬 후 나무 뒤에서 뛰어나와 공포에 질린 가젤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자가 뒤에서 공격하자 가젤은 우리가 탄 van 앞 땅바닥에 쓰러졌다.
나의 충격이 가라앉을 무렵 사자는 가젤을 입에 물고 근처 나무로 끌고 갔다.
사자가 가젤의 뼈를 씹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내가 van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졌다.
나는 National Geographic 기자가 된 기분으로 먹이를 포식하고 있는 사자의 사진을 찍었다.

Sometimes when I'm flying from one speaking engagement to another, I find myself sitting next to someone who's quite talkative.
This is often a pleasing experience for me because I enjoy meeting people.
I learn so much by watching and listening to the people I meet and see every day.
I've heard stories of sadness and delight which would be better than those on well-known TV programs.
때때로 비행기를 타고 이런 저런 강연회에 다닐 때 말이 아주 많은 사람 옆에 앉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은 종종 내게 유쾌한 경험이다.
나는 내가 매일 만나보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운다.
나는 유명한 TV 프로그램에서 나온 이야기들보다 슬픔과 기쁨에 대한 더 나은 이야기들을 들어왔다.

After we had eaten, my husband asked me if I would please get him a soft drink.
저녁식사 후 내 남편이 음료수를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I obligingly got him a soft drink and thought nothing of it.
나는 친절하게 그에게 음료수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Much to my astonishment, I soon found myself defending my actions.
놀랍게도 나는 내 행동을 내 스스로 변호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I received a severe tongue lashing from the other women for "waiting on my husband."
내 남편을 시중든다는 이유로 나는 다른 부인들로부터 가혹한 질책을 받았다.
I was told that I should have instructed him to go and get the drink himself.
내 남편에게 직접 가서 음료수를 가져오도록 했어야 했다고 말을 들었다.

I've enjoyed having a drink with you, but it's time to quit, okay.
함께 한 술자리가 즐거웠소. 하지만 이제 그만 마셔야겠는데 괜찮겠지요.
I've fallen off the wagon three times, and it all starts with the idea that I can have a drink or two and keep it under control.
난 술을 세 번이나 끊었다가 한 두 잔 마시고 절제를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다시 마시기 시작했죠.
I went a month one time sipping wine and limiting myself to a glass a day.
한 번은 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며 하루에 한 글라스정도로 제한하면서 한 달을 보낸 적이 있지요.
Then it was a glass and a half, then two, then three.
Then rehab.
그후 한잔 반, 두잔, 세잔이 되었지요.
그리고 나서는 원상태로 돌아왔지요.
I'm an alcoholic, and I'll never get over it.
나는 이제 알코올 중독자이며 결코 회복하지 못할 것 같소.
* off the wagon: 끊었던 술을 다시 시작하여 ↔ on the wagon: 술을 금주하여, 술을 끊고
rehab n. 복귀(=rehabilitation) vt. 원상태로 복귀하다, 복원하다(=rehabilitate)

I usually go to work by subway.
나는 대개 출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한다.
I get to work by 8:00 A.M.
나는 8시 무렵 직장에 도착한다.
Before I start my job, I put on my uniform and look at myself in the mirror and make sure that I look neat.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유니폼을 입고 거울에 내 모습을 보고, 깔끔하게 보이도록 한다.
At 8:30 in the morning, I go on duty.
아침 8:30에 일을 시작한다.
I usually eat lunch from twelve to one and generally take a ten-minute break in the morning and in the afternoon.
나는 대개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나는 아침, 오후에 10분의 휴식을 가진다.
At 4:30 in the afternoon, I go off duty.
4:30에 일을 마친다.

I am beside myself trying to work this out and am having very little success.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느라 제 정신이 아니다.
그리고 거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When holidays come around, Charlie is never included.
휴일이 돌아올 때 Charlie는 결코 낄 수가 없다.
This puts me in an awkward position because when I don't attend these functions, I hurt my family.
이것은 나로 하여금 어색한 위치에 있게 한다.
왜냐하면 내가 이 행사들에 참석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I'm one of those fools who is afraid to fly, but I find myself doing a lot of it because it's vital to my business.
나는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하는 바보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비행기 타는 것이 사업에 극히 중요하므로 비행기를 자주 탄다.

I stood by at Jimmy's funeral and watched a parade of young people say goodbye to their good friend.
나는 Jimmy의 장례식에 서서 좋은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젊은이들의 행렬을 지켜보았다.
For most of these kids, I'm sure it was their first experience with death.
이 젊은이의 대부분에게 이번이 죽음에 대한 그들의 첫 번째 경험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I have a 20-year old son myself.
나는 20살인 아들이 있다.
I held him in my arms as he cried for the life he and his cousin Jimmy will never share.
나는 그가 Jimmy와 함께하지 못할 삶을 슬퍼할 때 팔에 안았다.
We should try to get through to our kids the importance of seat belts.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벨트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
I have never experienced anything so painful in my life as Jimmy's death.
나는 Jimmy의 죽음만큼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We can't tell our kids too often to put their seat belts on and stay alive for their own sake as well as those who love them.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벨트를 메고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살아 있으라고 아무리 자주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There are people who would say I'm not being honest with myself.
The traditional notion is that if you are by yourself you can't have a good time.
But that's really out of date.
It seems the longer I stay single, the less I'm inclined to give up that lifestyle."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전통적인 생각은 혼자 있다면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구시대적인 것이다.
내가 독신으로 더 오래 머물수록 나는 그런 생활방식을 더욱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But, for many people, the decision to remain unwed comes down to one big advantage: freedom.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미혼으로 남으려는 결정은 자유라는 하나의 큰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You can do what you want, go as you please," said Debi Orteg, 40, of Simi Valley.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다" 고 Simi Valley의 40살된 Debi Orteg는 말했다.
"You don't have anybody to worry about but yourself."
Orteg, an insurance claims assistant, said she can support herself and doesn't feel the need for a husband's companionship.
보험 청구 보조원인 Orteg는 그녀가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고 남편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I have my friends ― both male and female ― for that," she said.
"나는 그런 이유로 남자, 여자 친구가 모두 있다"고 말하고 있다.
"And when I'm not with someone else, I'm really content to be by myself.
I've come this far without being married, and I don't want to give up my independence quite yet."
"그리고 누구와 함께 있지 않을 때 나는 혼자 있는 것에 정말 만족한다.
나는 결혼하지 않고도 이까지 왔다.
그리고 나는 나의 독립을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다."

While in university, I dated my future husband, who was preparing for the ministry.
대학 생활 때, 난 미래의 신랑과 만났는데 그는 목사가 되기 위해 준비중이었다.
One Sunday morning I accompanied him to a nearby church where he was to preach.
어느 일요일 아침 그와 함께 그가 설교를 하기로 되어 있는 근처 교회에 갔다.
Anxious to make a good impression, I sat in the front row by myself.
좋은 인상을 주길 바라며 혼자서 맨 앞줄에 앉았다.
At the conclusion of the service, the song leader announced the final hymn.
예배가 끝날 무렵 성가대장이 마지막 찬송가를 공표했다.
I stood and joined the singing, but the song leader kept directing nervous glances toward me.
난 서서 찬송을 부렀지만 성가 대장이 근심스런 시선을 내게 계속 보냈다.
During the second verse, this intensified to an unmistakable stare.
2절을 부르는 동안 이러한 시선은 틀림없이 강해졌다.
Embarrassed, I began to check my dress for static-cling.
당황하여 나는 내 드레스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훑어보기 시작했다.
Finally, the man smiled with resignation and said to the congregation, "For the last verse, why don't we all stand?"
마침내 성가 대장은 체념의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마지막 절은 우리 모두 일어서서 하지 않겠습니까?"

Last week I saw a young mother driving with a child, about 2 years old, standing on the front seat.
나는 지난주에 두 살쯤된 아이가 앞자리에 선채로 운전해가는 한 젊은 주부를 봤다.
I was so angry that I pulled up alongside her and asked, "Do you love your little girl?
나는 너무 화가나서 그녀옆에 차를 세우고 물었다.
"당신은 당신의 어린 딸을 사랑합니까?"
The woman looked startled and replied, "Of course I do."
그여자는 놀라면서 대답했다. "물론이죠."
I said, "Well, please put her in her seat belt so you can love her longer."
나는 말했다. "그러면 당신이 아이를 더욱 오랫동안 사랑해 줄 수 있도록 아이에게 안전벨트를 채우도록 하시오."
In 1984, I lost twin daughters because I told myself, "Why bother with seat belts? We're only going a few blocks."
1984년에 나는 "안전벨트를 할 필요가 있을까? 단지 몇 블록만 갈텐데."라고 생각해서 두 쌍둥이 딸을 잃고 말았다.
I shall never forgive myself for making that terrible mistake.
나는 나의 그 큰 실수를 결코 용서할 수가 없다.
Accidents don't always happen to other people.
사고가 항상 남의 일인 것만은 아니다.

Every day, I ask myself, "Why didn't I make an effort when Mom was alive to make her life easier?"
매일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가 편히 사실수 있도록 내가 왜 노력하지 않았던가?"

I've been tardy for school twice in the last eight weeks and these black marks against me will hurt my grades.
나는 지난 8주동안 두 번 지각 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이 오점이 내 성적에 영향을 줄 것이다 .
My mom says if I know I have no one to depend on but myself, I'll hear the alarm.
어머니는 내가 자신말고는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내가 알람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한다.
So far she's been wrong.
이제까지는 그것은 틀린말이다.

A bear approached a hunter in the forest and asked him what he was after.
숲 속에서 사냥꾼을 만난 곰이 뭘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I'm after a fur coat for myself," said the hunter.
"내가 입을 털 코트감을 찾고 있어."
"I'm out looking for some breakfast," said the bear.
"Why not step into my cave and we'll talk this thing over?"
"난 아침 식사 거리를 찾고 있는 중이오.
그럴 것 없이 내 굴속으로 들어와서 피차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없겠나 이야기해 봅시다."하고 곰이 제안했다.
The hunter agreed to this and they retired to the cave and sat down to work out a compromise.
사냥꾼은 곰을 따라 굴속으로 들어가 타협책을 모색하기 위해 앉았다.
The bear got his breakfast and the hunter was in a fur coat.
결국 곰은 아침식사를 먹었고, 사냥꾼도 털옷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Sometimes it is very difficult to say no to people, but when I say yes to too many projects, then can't get them done, I am not only being unfair to myself; I am also being unfair to the person to whom I made the promise.
때로는 사람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만, 너무 많은 일에 "예"라고 하게되면, 이들을 다 못할 수도 있으며, 또한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약속을 한 상대방에게까지 공정치 못하게 된다.
We need to learn how and when to say no, particularly in our personal lives.
우리는 특히 사생활에 있어서 언제 어떻게 "아니오"라고 해야할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Think about it.
생각해 봐라.
If I don't have wisdom I can only teach you my ignorance.
만약 내가 지혜가 없다면, 나는 단지 나의 무지를 가르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If I don't have joy I can only teach you despair.
만약 내가 즐거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는 단지 사람들에게 절망밖에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If I don't have freedom I can only put you in cages.
만약 내가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는 단지 사람들을 구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But everything that I have I can give away.
그러나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That's the only reason for having it.
그것이 바로 가지는 유일한 이유이다.
But I've got to have it first.
그러나 우선 내가 그것을 가져야 한다.
And so I dedicate myself to becoming the best me the world has ever known.
그래서 나는 이세상에서 여태것 알려진 사람 중 최고의 내가 되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

I didn't have to stiffen my resolve when faced with a goodie;
I just said to myself, "Steve won't let me eat that,"
and I gradually lost the whole 20 pounds, coasting along on his willpower.
맛있는 것을 대했을 때 나는 내 결심을 굳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면 되었다.
"스티브가 저걸 먹게 허락하지 않을거야."
그리하여 점차 나는 20파운드 전부를 줄이게 되었다, 그의 의지력에 힘입어 쉽게.

Sometimes I ask myself at night what I have done that day, what new thought or idea
I have had, what particular emotion I have felt, what there has been to mark it off
from its fellows;and more often than not it appears to me insignificant and useless.
때때로 나는 밤에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그날 무엇을 했고, 어떤
새로운 생각을 했으며,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꼈고, 그날을 다른 날들과
구분해줄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그날이 내게
하잘것없고 소용없어 보인다.

"My policies often change, sometimes radically. But so do circumstances. I like
to think of myself as one of those people who adapt themselves to changing
circumstances, who react to the changes, and who sometimes help to create them."
Moshe Dayan
"내 정책은 가끔 바뀐다, 때로는 근본적으로. 그런데 상황도 그렇게
된다. 나는 변하는 상황에 자신을 적응시키고, 변화에 적응하며, 때로는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는 데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생각하고 싶다."-모쉐 다이언.

* supply-side economics :공급측경제학(공급면에 중점을 두는 경제 철학 또는 정책.)

DEAR ABBY : I'm glad you advised that 15-year-old girl against dating boys
of a different religion if she had no intentions of marrying out of her faith.
I was raised in a strict Baptist home, but dated boys I knew I could not marry. I
fell deeply in love with a Jewish boy, but I married someone else. That was over 30
years ago, and I still dream of my first love. Now I wish I had either married him
or not set myself up to fall in love with a man I could not marry.
I REMEMBER MOREY
친애하는 애비씨: 저는 당신이 그 15세 소녀에게 자신의 종교에서
벗어나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결혼할 의사가 없다면 다른 종교를 믿는
청년과 데이트하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다는 것이 기쁩니다. 저는 엄격한
침례교도 집안에서 자랐지만, 제가 알기에 제가 결혼할 수 없는 청년들과
데이트를 했습니다. 저는 유태인 청년과 깊은 사랑에 빠졌지만, 다른 사람과
결혼 했습니다. 그게 30년이상 전이었는데, 저는 아직도 저의 첫사랑에 대한 꿈을
꾼답니다. 지금 저는 그와 결혼했거나 제가 결혼할 수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했더라면 좋았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참고: MOREY는 필자가 처음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일 것이다.)

When I was growing up, there was a teakettle in our house with a lid that
did not fit tightly. When steam began to rise, that lid would shake and
rattle and make a terrible noise. Of course, the lid was doing no good.
In fact, it was allowing the steam to escape, but it made quite a racket
and impressed you as being very busy and very important. I've always
remembered that teakettle, and whenever I see a person who makes a lot
of noise without really accomplishing much, I say to myself, "That one
has a loose lid."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뚜껑이 잘 맞지 않는 주전자가 있었다. 수증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뚜껑은 흔들리고 덜컹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물론 뚜껑은 유익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김을 새나가게 하고 있을 뿐이지만 워낙
법석을 떨어서 아주 바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나는 항상
그 주전자를 기억했고 별로 하는 일없이 시끄럽기만 한 사람을 볼 때마다
"저 친구의 뚜껑도 헐렁하구나."라고 생각했다.

*say to oneself 생각하다 think:
일찍 잠에서 깨어 "일어날까?"하고 생각했다.
I woke up early and said to myself, "Shall I get up?"

Recently I bought a new car radio from a dealer who recommended it highly.
It proved no better than the one it replaced. I was about to charge into
his store and demand my money back, but it occurred to me to put myself
in his place. Doing this I saw how offended he'd be at having his judgment
questioned. So I took a different tact and appealed to his sense of
self-respect. He exchanged the radio for a much better one, without
charging me the difference in cost. As my grandmother used to say,
"You can catch more flies with honey than with vinegar."
얼마전 자동차 라디오를 샀는데 판매업자는 그것이 아주 좋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에 것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당장 그의 상점으로 달려가 물러달라고
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봤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 그는 자기의 판단 능력을 의심받게 되어 무척 기분이 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달리해 그의 자존심에 호소하기로 했다. 그는 훨씬 좋은
것으로 바꿔주면서 차액을 청구하지 않았다. "식초보다 꿀로 더 많은 파리를
잡을 수 있다."라고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Having put on a good deal of weight since graduation, I couldn't decide
whether I wanted to go to my class reunion and subject myself to the
scrutiny of former classmates. It was a note from a long-ago best friend
that gave me the courage to go. She signed off: "Dieting to see you again."
졸업 후 체중이 많이 늘었기 때문에 반창회에 나가서 옛날 급우들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지 망설였다. 내게 갈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은 오래 전에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서 온 짧은 편지였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로 편지를
마쳤다. "너를 다시 만나려고 다이어트 중이다."

During my lunch hour, I made a purchase at a crowded bookstore and decided
to charge it. The two clerks were harried, and my transaction was traded
from one woman to another.
When I got outside, I noticed I had both the customer and merchant copies
of the charge form. I thought to myself that I'd just gotten a free book.
But by the time I sat down at my desk, my conscience was bothering me,
and I reached for the phone. When a clerk answered, I explained the
situation and told her I'd return their copy after work.
"Thank you," the woman replied. "I'm glad you called. You left your
charge card on the counter."
점심 시간 중 어느 고객이 붐비는 서점에서 책을 사고 신용 카드로 결제하기로
했다. 점원 두 사람이 계속 시달리는 바람에 내 계산은 한 여자에게서 다른
여자에게로 넘어갔다.
밖으로 나왔을 때, 고객용과 상인용 두 개의 신용거래 용지가 내 손에 있는
것을 알았다. 책을 공짜로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상 앞에 앉는
순간 양심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해서 전화기를 잡았다. 점원이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퇴근 후 용지를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여자가 대답했다. "전화해줘서 기뻐요. 당신은 신용카드를
카운터에 놓고 갔더군요."

On a plane trip, I took along my 18-old son, Jonathan. As a business
traveler, I understood the grimacing faces I saw as we boarded the
7 a.m. flight. I vowed that my son wouldn't create a disturbance.
I read to him, played games and constantly kept him occupied.
When the flight was almost over and I had just congratulated myself
that Jonathan hadn't cried once, one businessman turned to me and
said, "Your son has been great, but you are driving me out of my mind."
비행기 여행을 하는데 18개월 짜리 아들 죠나단을 데리고 갔다. 사업상
여행을 자주 하는 나는 오전 7시 비행기를 탔을 때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아들이 시끄럽게 굴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책을 읽어주고, 게임도 해주면서 계속 아들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비행기 여행이 거의 다 끝났고 죠나단이 울지 않았던 것에 대해 자축하려
할 때 한 사업가가 나를 향해 말했다. "당신 아들은 훌륭했는데, 당신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소."

Very early in my boyhood I had acquired the habit of going about alone
to amuse myself in my own way.
My mother would miss me when looking out to see what the children were
doing, and I would be called and searched for, to be found hidden away
somewhere in the wood.
This distressed her very much; then to her relief and joy she discovered
that I was there with a motive which she could understand: that I was
watching some living things.
And as she loved all living things herself, she was quite satisfied that
I was not going queer in my head, for that was what she had been fearing.
아주 어렸을 때 나는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기는 버릇이 있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러 나왔다가 내가 없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나를 부르며 찾아다니다 내가 숲 속 어느 곳에 혼자 있는 것을 발견하시곤 했다.
이것 때문에 어머니는 무척 걱정하셨다. 그러나 내가 숲 속에 가는 것은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동기 즉 내가 생물들을 보려는 것임을 알게 되자 어머니는
안심하고 기뻐하셨다.
어머니도 생물들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걱정했던 것처럼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매우 만족하셨다.

I have frequently experienced myself the mood in which I felt that all
is vanity; I have emerged from it not by means of any philosophy, but
owing to some imperative necessity of action. If your child is ill, you
may be unhappy, but you will not feel that all is vanity; you will feel
that the restoring of the child to health is a matter to be attended to
regardless of the question whether there is ultimate value in human
life or not. A rich man may, and often does, feel that all is vanity,
but if he should happen to lose his money, he would feel that his next
meal was by no means vanity.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기분을 나 자신이 많이 경험했다. 내가 그런 기분에서
벗어난 것은 어떤 철학을 통해서가 아니고 긴박한 행동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당신의 아이가 아프다면 불행할지언정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 궁극적인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는 관계없이
아이가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관심사가 될 것이다. 부자도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지만 돈을 다 잃었을 경우 다음 번
끼니가 결코 허무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When my child was six months old, I re-entered the work force. I was anxious
about how I would juggle the morning chores―feeding and dressing the baby
and myself, packing a lunch and the baby's bag, dropping her off at day
care and still getting myself to work on time.
One frantic morning, I strapped the baby in the car seat and pulled out
of the driveway ten minutes ahead of schedule. "Mommy is so efficient,"
I happily told her. My smugness disappeared a few blocks later when I
looked down and realized I was still in my bathrobe.
우리 애가 6살이었을 때, 나는 다시 직장을 잡았다. 아침에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걱정이 되었다. 아기와 내가 먹고, 옷을 입고,
점심밥과 아기의 가방을 챙기고, 아기를 유아원에 맡기고, 시간에 맞춰
출근해야 했다.
어느 날 아침 허겁지겁 아기를 자동차 자리에 묶어놓고 예정보다 10분 일찍
집을 나설 수가 있었다. "엄마는 일을 잘한다." 나는 신이 나서 아이에게
말했다. 몇 블럭을 갔을 때 나의 자만심은 사라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는 아직도 목욕복을 입고 있었다.

Trying to cut down on expenses, I decided to bring my own lunch to work.
Unfortunately, I kept forgetting my sandwiches in my morning rush.
One night I left myself a note near the front door.
Next morning I spotted the message and went to the refrigerator, but
my lunch wasn't there. I retraced my steps and took a closer look at
the note. Underneath "Don't forget your lunch," my roommate had
scrawled, "Thanks!"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장에 점심을 싸가기로 했다. 아침마다 서두르는 바람에
샌드위치를 두고 가는 때가 많았다. 어느 날 밤, 나는 현관문에 쪽지를 써 붙였다.
다음 날 아침 그 쪽지를 보고 냉장고로 갔는데 거기에 내 점심이 없었다.
다시 문 가로 돌아가 쪽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점심 가져가는 것을
잊지 말아."라고 쓴 밑에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고마워!"라고 써놓았다.

Having just finished my second graduate degree, I had the summer ahead
of me before returning to my college teaching post. To help support my
family, I took a construction job.
One very hot day, my boss overheard me mutter to myself, "Two master's
degrees, and I'm digging ditches!"
"Yeah," he interjected, "and last year I had a guy with a sixth-grade
education. He sure did a lot better than you're doing."
두 번째 대학원 학위를 마치고 대학 강사직으로 돌아가기까지 한 여름을
기다려야 했다. 가족을 부양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건설공사장에서 일했다.
어느 매우 더운 날, 내가 혼자 지껄이는 소리를 작업반장이 들었다.
"석사 학위를 두 개나 가지고서 도랑을 파야하다니!"
"그래," 그가 불쑥 말했다. "작년에 국민학교만 졸업한 친구가 있었는데
당신보다 훨씬 일을 잘했어."

A:Who's the tall girl next to Barbara?
바바라 곁에 있는 키 큰 아가씨는 누구지?
B:That's Mary Anderson
그녀는 메어리 앤더슨이야.
B:Let me introduce you to her right now
지금 널 그녀에게 소개해줄께.
**
Who's는 Who is를 줄인 말이다. Whose의 발음과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발음은 다 같다. 자신을 소개할 때는 Let me introduce myself?나
May I introduce myself?라고 말한다. A를 B에게 소개할 때는 Let me
introduce A to B?나 May I introduce A to B?라고한다.

6. 길을 물을때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을 물을때>
A : Excuse me. Could you tell me how I can get to the
First National Bank?
B : Go straight on this street, turn to the left at the
second corner, and you'll find it.
A : Excuse me. Could you tell me the way to the First
National Bank?
B : Yes, Walk for two blocks. You'll find it on your right.
A: Excuse me. Is this the right way to the First National Bank?
B : I'm sorry. I'm a stanger here myself.
Could you draw me a map, please?
A : 실례합니다만 제일은행에 가는 길을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B : 이쪽으로 쭉 가세요, 두번째 코너에서 좌측으로 돌면
제일은행이 보입니다.
A : 실례합니다만 제일은행에 가는 길을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B : 네. 두 블럭을 걸어가시면 오른쪽에 그 은행이 있습니다.
A : 실례합니다만 이게 제일은행으로 가는 길인가요?
B : 미안합니다. 저도 여기는 처음입니다.
지도를 좀 그려주시겠어요?

(외출중 갑자기 아플때)
Help me, please. Call an ambulance, please. I can't
move by myself.
I'm very sick. Take me to the hospital, please.
Could you take me to the nearest medical center?
도와주세요. 앰블런스를 불러주세요. 혼자서는 움직일 수가
없어요.
너무 아파요. 병원까지 데려다 주세요.
가까운 병원에 좀 데려다 주시겠습니까?

7월 7일의 따뜻한 대접에 대해 정씨나 저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그만
너무 늦어져 버려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I regret the delay in writing to you on behalf of Mr.Chung and myself
to thank you for your warm hospitality on July 7.
regret the delay in writing [서신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warm hospitality [따뜻한 대접]

나는 즐겁게 놀기 위해 해변에 갔다.
I went to the beach to enjoy myself.

그 사실을 나만 알고 있겠다.
I'll keep that to myself.

운명에 순종할 바에야 자살하는 편이 낫다.
I'd rather kill myself than reconcile myself to my fate.

이 길을 가면 서울 역에 갈 수 있나요?
Does this street lead to Seoul station?
저도 여기 처음입니다.
I'm a stranger here myself.

자기를 위해 먹고, 남을 위해 입어라.
Eat to please myself, but dress to please others.

자기를 위해 먹고, 남을 위해 입어라.
Eat to please myself, but dress to please others.

The smiling landscape of last summer is gone. There is neither the smell
of the warm grass nor the scent of flowers and pines. The sun is setting.
The flat land now rolls away to the horizon with the sky pressing down
like a dark blanket. I scan the village, and there is no sign of
movement. The whole village looks deserted. I find myself alone in the
midst of isolation, Only occasional gusts of wind stir broken boughs and
dust, threatening to blow away everything.
지난 여름의 미소 짓는 풍경은 사라졌다. 따뜻한 풀 냄새도 꽃과 소나무의
향기도 없다. 해가 지고 있다. 평지는 지금, 어두운 담요처럼 하늘이 짓누르는
체, 지평선을 쫙 펼쳐져 있다. 마을을 훑어 보는데, 움직임의 낌새도 없다. 온
마을이 황량해 보인다. 나는 고립의 한가운데에 혼자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단지 때때로 이는 돌풍이 부러진 나뭇가지와 먼지를 휘저으며,
만물을 날려버리겠다고 위협한다..

"I made a serious commitment to myself to give it my best every time I
competed," says Paula Fraser, 1989 World Marathon winner. "For that same
reason, I wear Bronks. They are seriously committed to performance as I
am ; whether I am training or racing, I do it comfortably in a pair of
Bronks." Working with researchers from Chicargo University, Bronks has
designed its products to meet the special biochemical needs of men and
women. A special cushioning system provides exceptional shock absorption.
Put on a pair and check out the feel of real performance yourself.
1989년 마라톤 우승자인 Paula Fraser는 "나는 경쟁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자 스스로 진지하게 다짐했다"고 말한다. "똑같은 이유로, 나는
Bronks를 착용한다. 그것들은 나처럼 운동에 진지하게 전념한다. 내가 훈련을
하든지, 경주를 하든지, Bronks 한 컬레를 신고서 편안히 행한다." 시카고
대학출신의 연구원들과의 작업으로, Bronks사는, 사람들의 특별한 생화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그 제품을 고안했다. 특수한 쿠션 구조는 독특한 충격
흡수를제공한다. 한 켤레의 Bronks를 신고 진짜 운동 기분을 스스로 체크해
보시죠.

One winter night I found myself lost in the fog and in a part of the
city I didn't know. Then, I met a man and asked him to direct me. He said
okay and we walked together, with his hand on my elbow. When we arrived
at the address I had given, I said goodbye, thanking him. As I turned to
shake his hand, I realized he could not see my hand, and indeed the way
we had come. The stranger who had led me so surely through the fog was
blind.
어느 겨울 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도시의 안개 낀 곳에서 길을 잃었음을
알았다. 그 때 한 남자를 만나 그에게 길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OK
해서, 그가 내 팔을 잡은 채, 우리는 함께 걸었다. 내가 준 주소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 나는 감사해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악수를 하려고 돌아섰을
때, 나는 그가 내 손과 우리가 왔던 길을 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안개 속에서
나를 아주 분명하게 인도했던 낯선 그 사람은 장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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